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충성 지지자이자 세계 최고 부호인 일론 머스크와 전 대선 후보 비벡 라마스와미를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 이니셔티브의 책임자로 12일 임명했다.
머스크가 즐겨 사용하는 밈 암호화폐에서 이름을 따온 DOGE는 정부 지출의 대대적인 삭감을 위한 작업을 착수할 예정이다. 머스크는 국방 분야를 제외한 연방 정부 부처 예산에서 최소 2조 달러(약 2,783조 원)를 삭감하고 규제를 대폭 축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머스크는 이를 ‘쓸모없는 규제의 대청소’에 비유했다.
DOGE는 이름과 달리 당장은 실제 미국 정부 부서로 운영되지 않을 예정이다. 이러한 부서를 신설하려면 의회의 법안 통과가 필요한데, 현 정치 환경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1972년 제정된 연방자문위원회법에 따라 기업 전문가들이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는 협의체로 운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대규모 선거 자금을 지원하고 X 플랫폼에서 대대적인 지지를 보낸 머스크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플리케이션 보안 솔루션 업체 메이헴 시큐리티(Mayhem Security)의 CEO 데이비드 브럼리는 “공식 정부 부처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핵심은 머스크가 이제 트럼프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고, 경험이 부족한 인사가 대거 임명된 상황에서 머스크의 조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업계 종사자는 DOGE가 제안하는 예산 삭감안이 실행될 경우, 연방 기관 대부분의 사이버 보안 역량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브럼리는 “사이버보안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지만, 보안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적인 요소들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보안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브럼리는 또한 “머스크가 사이버 보안 영역을 관리하고 규정을 만드는 관료를 배제하고 제거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트위터 인수 후 사이버 보안, 신뢰, 안전 담당자를 포함한 직원 80%를 감원했던 것처럼, 관료 조직에서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인사들을 제거할 것”이라고 전했다.
머스크의 사업과 사이버 보안의 연관성
DOGE가 어떤 사이버보안 규제에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정부 기관들의 규제 권한을 약화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기관들의 사이버보안 요구사항이나 권고안이 약화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이버 보안 규제를 축소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과 맥을 같이한다. 올여름 대법원이 셰브론 원칙(Chevron deference, 미국 규제기관의 법률 해석과 시행에 관한 자율권을 인정하며, 특히 복잡한 행정 규제에서 기관의 전문성을 존중해준 원칙)’을 폐지한 결정 역시 이러한 규제 완화 기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머스크의 주요 사업과 관련된 사이버 보안 규정 및 DOGE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고사항은 다음과 같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
스페이스X와 테슬라와 관련된 주요 사이버보안 규제는 ‘사이버-물리적 시스템’ 또는 운영 기술(OT)에 의존하는 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규제는 일반적인 사이버보안 규제와 달리, 정부 기관과의 비공개 협의를 통해 맞춤형으로 설계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머스크의 기업들이 이러한 요구사항을 얼마나 준수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브럼리는 “스페이스X는 나사(NASA)와 협력하며, 최종적으로 나사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프로그램의 규모를 고려할 때 이러한 사안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몇 가지 잘 알려진 규제 정책들이 DOGE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기술적으로 연방 요구사항은 아니지만, 사이버보안 위험 관리에 대한 권장 사례로 정부 기관에 의해 언급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우주 자산 보호를 위한 지침으로 서명한 우주 사이버보안 정책 지침(SPD-5)이 이에 포함된다.
테슬라와 관련해서는 2023년 2월 미국 연방고속도로관리국과 교통부가 발표한 ‘국가 전기차 인프라 표준 및 요구사항’이 머스크의 규제 철폐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요구사항은 전기차 충전소의 최소 기준과 규제 요건을 포함하며, 사이버보안 요구사항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머스크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2022년 발표한 최신 차량에 대한 자발적 사이버 보안 지침의 무효화를 시도할 수 있다.
뉴럴링크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스타트업인 뉴럴링크(Neuralink) 역시 사이버 보안 요건에 직면해 있다. 2023년 5월 뉴럴링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뇌 임플란트의 인체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2024년 9월에는 시각장애인의 시력 향상을 위해 개발된 블라인드사이트(Blindsight) 임플란트가 FDA로부터 ‘혁신 기기(breakthrough device)’로 지정되었다. 이 두 기기는 모두 FDA가 권고하는 의료기기 사이버보안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
xAI
머스크가 2023년에 설립한 인공지능 기업 xAI는 오픈AI(OpenAI)의 경쟁사로 출범했다. 이 회사는 “우주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머스크의 야심찬 계획을 고려할 때, DOGE는 파이브 아이즈 컨소시엄의 AI 시스템 보안 공동 지침, 바이든의 AI 안전 및 보안 행정명령, 백악관의 AI 권리장전 청사진과는 다른 정책 방향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과거 트럼프가 첫 임기 때 논란 없는 AI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머스크가 작년 9월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이 거부권을 행사한 엄격한 AI 규제 법안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머스크와 DOGE가 기존의 AI 안전 정책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X(구 트위터)
머스크의 소셜미디어 네트워크 X는 연방 규제를 받지 않지만, 머스크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 관련 동의 명령 무효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머스크는 연방 차원의 콘텐츠 규제 법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소셜 미디어와 기타 플랫폼에 게시된 혐오 발언 및 모욕적 콘텐츠에 대한 면책을 규정한 통신품위법 230조의 폐지 방안이 포함된다.
머스크의 이해 상충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 형성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기업이 직면한 사이버 보안 관련 요구사항이 많고, 특히 미국 정부 계약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고려할 때, DOGE에서의 머스크의 역할이 심각한 이해 상충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나사(NASA)는 지난 10년간 두 차례의 유인 달 착륙을 위해 스페이스X에 4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스페이스X는 미국 국방부와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다수 계약을 체결했으며, 일부는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 또한 미 국방부는 로켓 발사, 위성 구축, 우주 기반 통신 서비스를 위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를 통한 우크라이나 인터넷 서비스를 구매했다. 스페이스X는 최근 5년간 110억 달러 규모의 연방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영리 소비자 보호 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의 정부 윤리 연구원 크레이그 홀먼은 “DOGE의 수장으로 일론 머스크를 선택한 것은 최악의 결정”이라며 “머스크는 현재 스페이스X 로켓 개발의 안전 규정을 두고 연방항공청(FAA)과 대립하고 있으며, 텍사스 발사대 주변 오염으로 환경보호청(EPA)의 제재를 받았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슬라 관련 머스크를 징계했고, 도로교통안전국은 테슬라 자율주행차의 안전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홀먼은 “머스크는 정부 안전 기준을 완화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막대한 정부 계약을 좌지우지할 위치에 설 것이다”라며 “이러한 임명은 공익에 반할 뿐 아니라, 정부 규정의 자의적 조작과 계약 공정성 하락 등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이버 위협 연합의 마이클 다니엘 회장 겸 최고경영자도 “막대한 사업적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이 자신의 결정으로 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는 발상은 대중의 반감을 살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규제 철폐의 난관
머스크와 DOGE가 상당수 규제를 철폐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전 영란은행 수석 고문인 토니 예이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 이 모든 것이 단지 말뿐인지, 전반적으로 얼마나 큰 반대에 부딪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예이츠는 “미국에는 아직도 작동하는 견제와 균형 체계가 있다”라며 “정치적 환경이 불안정하더라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라고 분석했다.
다니엘은 과거에도 미국 행정부가 민간 전문가를 초빙해 정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권고안을 작성한 사례가 있지만 “결국 대부분의 정책은 의회를 통과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과도 어려운 협상을 해야 한다. 다니엘은 “연방 정부의 모든 프로그램에는 관련된 선거구가 있다”라며 “현 행정부가 무시하는 선거구일 수 있지만, 선거구가 없는 프로그램은 결국 삭감되거나 폐지되어 그 자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는 머스크의 규제 완화 목표 달성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예이츠는 “트럼프와 머스크가 정부 지출의 20~40%가 낭비라고 보고 급격한 삭감을 계획하고 있다”라며 “이는 터무니없는 발상으로, 현대 국가에 일정 수준의 낭비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행정 체계에 심각한 손상을 주지 않고 그러한 규모의 예산을 절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dl-ciokorea@foundryco.com